2008년 2월 15일 금요일

아무도 지키지 않는 과기부, 정통부

이명박 정부의 조직개편안에서 해체가 예정됐던 부서들은 통일부, 여성부, 과기부, 정통부, 해수부 등이었다. 그러나 통일부는 이미 존치하는 쪽으로 의견접근을 이뤘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고, 여성부와 해수부는 통합민주당에서 지키려는 의지가 강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현상을 보면서 몇 가지 안타까운 것은 정부조직개편이 총선용 재료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미래에 대한 비젼과 사회통합에 대한 철학을 갖고 있어야 할 정부는 과학기술에 대한 의지보다는 건설, 관광, 금융에만 관심을 갖고 있는 듯 하다. 게다가, 정부의 정책을 견제하고 검증해야 할 국회는 시간에 쫓기고 총선에 목을 매면서 정작 아무도 과기부와 정통부는 지켜주지 않고 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통일부, 여성부, 과기부는 지키면서 정통부와 과기부는 협상 대상에 넣지 않는 것일까. 통일 정책, 특히 햇볕정책은 김대중정부부터 참여정부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대북 정책이었고, 이는 소위 '민주세력'에게는 정체성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부분이므로 아마도 제 1 선택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여성부는 김대중정부에 처음 생겼고, 인권위는 참여정부가 만들면서 많은 활동을 해 왔던 조직이다. 결국, 이들이 해체되거나 폐지 혹은 축소되는 것은 통합민주당으로선 사형선고처럼 보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럼, 해양수산부의 경우는 어떻게 된 것일까. 해수부와 농촌진흥청은 해당 지역 국회의원들의 반발 떄문에 주목받고 있다. 해안 지역 출신 지역구 의원들은 해수부 폐지를 방관했다가는 다음 총선에서 당장 모가지가 날아갈 판이다. 해양수산부가 건설교통부와 함께 국토해양부로 바뀌는 것은 아마도 대운하를 염두에 둔 조각이겠지만, 바닷가의 주민들은 좋은 눈빛으로 바라보기 힘들다. 안그래도 먹고 살기 힘든데 어민들을 보살펴 주던 부서가 없어지는 것을 어찌 좋게 봐줄 수 있을까.

그렇다. 현재의 협상은 모두 '표'와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현재로선 협상에서 논외가 되고 있는 정통부와 과기부는 자연스레 해체의 길을 걸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몇 년간 우리나라는 정보통신으로 먹고 살았다. 우리나라의 IT 업계들이라고 해 봐야 큰 업체들은 대부분 통신, 전자업체들이지만 많은 벤처 기업들의 태반을 차지하는 IT 업체들은 이제 정통부의 '보호'보다는 많은 다른 '산업'들과 경쟁하고 파이를 나눠 먹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것을 단순히 '경쟁'으로만 받아 들인다면 크게 문제는 없다. 그러나 yundream님의 IT산업과 신자유주의 시장체제라는 글에서 보듯이 국가의 경제는 하나의 산업에서 다른 쪽으로 급격히 구조조정을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특히, 산업으로만 시장을 바라보기에는 IT업계는 타 업계와는 다른 뭔가가 있다.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 소개해 보겠다. 우리나라 IT 업계가 시작되던 시기 H전자에서는 조직의 윗선(이사급)은 대부분 건설 출신들이 차지하고 있었고, 엔지니어들은 이들과 대화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엔지니어: (기술적으로 왜 어려운지를 설명하며) 기한을 맞추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건설출신이사: 그래? 몇 명 더 투입하면 되는데?
산업자원부가 과연 정보통신부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지는 해 봐야 아는 일이지만, 우리나라 산업이 크게 바뀌는 것은 많이 우려스럽다. 그것은 이명박 정부가 주장하는 관광이나 금융보다 그나마 IT가 국제적으로 경쟁력이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과학기술부의 경우도 살펴보자. 이공계 기피 현상에 대해 몇 년 전까지 엄청난 성토가 이뤄지던 때만 해도 과학기술인도 뭉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꽤 컸다. 그리고, 이익단체를 구성해서 정부의 정책에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어쨌거나 현재 과학기술인연합이라는 것도 생기게 되었으나, 여전히 과학기술인들은 이권단체를 구성하지 못했다. 그것은 과학기술이라는 것은 원래 장벽이 없는 분야였고, 이미 배출된 사람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의사협회나 약사협회처럼 강력한 이익단체가 되기 어려웠다.

어쨌거나 과학기술, 혹은 연구 분야에 몸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쉽게 '표'로 환산하기 어려운 특성을 갖고 있다. 이들을 보호하고 권익을 지켜준다 해서 4월 총선에서 당선된다는 보증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니, 지켜주지 않았을 때 무조건 떨어질 거란 위기감을 갖지도 못는 것이 과학기술부가 존치되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것이든 정량적으로만 평가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결국 과학기술에 투입된 비용은 물먹는 하마로밖에 보이지 않는 이유가 되고 있다. (참조: 인수위는 왜 과기부를 없애려고 할까) 기술 종속국, 기초기술은 부족한 나라, 노벨 물리학상은 영원히 나올 가능성이 없는 나라가 되어야 할까. 성과주의, 정량적 실적주의로만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의 가치를 평가한다면 우리는 앞으로 계속 이런 현실을 바꾸지 못할 것이다.

전에도 정치인들을 믿지 못했지만, 이번 정부조직개편 협상을 지켜보면서 이 나라의 장래에 대해 매우 걱정스런 기분이 되었다. 물론, 과학기술만이 혹은 정보통신만이 우리가 나아갈 길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자원없고 문화재는 태워 먹지만, 교육수준은 높은 우리나라에서 좀 더 잘할 수 있는 것은 사람으로 해먹을 수 있는 분야가 아닐까.

오늘따라 컴퓨터, 전자업계에서 경력을 갖고 있으면 영주권을 준다는 호주 기술이민정책에 괜시리 눈이 돌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