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팀의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기술위원회 전원이 사퇴했다. 기술위 총사퇴는 축구팬들의 기억 속에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기사 제목이리라. 92년 처음 기술위원회가 생긴 이래 많은 기술위원들이 있었지만, 그 중 두 번은 놀랍게도 허정무 감독을 지키기 위해 사임했다.
허정무 감독을 지키기 위해 처음으로 사퇴했던 기술위원장은 조중연 현 축구협회 부회장이다. 2000년 올림픽 대표팀과 국가대표팀을 동시에 맡았던 허정무 감독은 올림픽 8강에 실패하며 여론의 뭇매를 맞고 사임의사를 밝혔다. (관련기사) 그러나 대표팀의 부진을 책임지겠다며 기술위원회는 사퇴하겠다는 허정무 감독의 유임을 결정하고 일괄 사퇴하고 만다. (관련기사) 그러나 기술위원회의 이런 바람에도 불구하고, 허정무 감독은 2000년 아시안컵 3,4위전에서 사우디아라비아에 패하고 2000년 11월 13일 끝내 사임하였다. (관련기사) 만일 이 때 아시안컵에서 괜찮은 성적을 거뒀더라면 우리는 히딩크 감독을 데려올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번 축구협회 기술위원회의 사퇴를 지켜보는 것이 낯설지 않은 것은 바로 2000년의 기억 때문일 것이다. 그 이후에는 기술위원회만 총사퇴하며 감독을 유임시켰던 사례는 없었던 걸로 기억된다. 감독의 퇴진과 함께 기술위원회가 동반 사퇴했던 것이 그간 한국 대표팀의 운영방식이었던 데 비춰 이번 일은 매우 이례적이다. 더군다나, 이런 일은 모두 허정무 감독 시절에만 일어났다는 사실에 대해 어떤 해석을 내려야 할지 궁금하다.
허정무 감독은 2007년 말 대표팀 감독 선임 때부터 잡음이 많았다. 허정무 감독의 실적으로 보아 대표팀 감독직을 다시 맡기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특히, 2000년의 아시안컵에서 허감독에 대한 엄청난 반발을 생각한다면 뭔가 아직 보여준 게 부족하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축구협회 내 학연간의 파벌 문제 등을 거론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정확히 판단할 만한 정보를 갖지 않은 탓이다. 그러나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다음은 1990년 이후 우리나라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의 목록이다.
감독 | 코치 | 재임기간 |
허정무 | 정해성,박태하 | 2007.12.7 ~ 현재 |
핌 베어벡 | 압신 고트비, 홍명보 | 2006.6.26 ~ 2007.7.29 |
딕 아드보카트 | 핌 베어벡 | 2005.10.1 ~ 2006.6.26 |
요하네스 본프레러 | 허정무 | 2004.6.24 ~ 2005.8.23 |
박성화 | (감독대행) | 2004.4.28 ~ 2004.6.9 |
움베르투 코엘류 | 박성화 | 2003.3.1 ~ 2004.4.19 |
거스 히딩크 | 박항서 | 2001.1.1 ~ 2002.6.30 |
허정무 | 정해성 | 1998.10.14 ~ 2000.11.13 |
김평석 | (감독대행) | 1998.6.22 ~ 1998.6.25 |
차범근 | 김평석 | 1997.1.8 ~ 1998.6.21 |
박종환 | 최만희 | 1996.7.8 ~ 1997.1.7 |
박종환 | 정해성 | 1996.2.15 ~ 1996.7.7 |
고재욱 | 박경훈 | 1995.10.20 ~ 1995.10.30 |
정병탁 | 조윤환 | 1995.9.16 ~ 1995.9.30 |
허정무 | 이장수 | 1995.8.1 ~ 1995.8.12 |
박종환 | 최만희 | 1995.4.26 ~ 1995.7.31 |
아나톨리 비쇼베츠 | 김성남 | 1994.7.24 ~ 1995.2.26 |
김호 | 허정무 | 1993.11.30 ~ 1994.7.23 |
김호 | 유기흥 | 1992.11.10 ~ 1993.10.29 |
김호 | 조광래 | 1992.7.8 ~ 1992.11.9 |
고재욱 | 허정무 | 1991.5.22 ~ 1991.7.27 |
박종환 | 김희태 | 1990.8.9 ~ 1990.10.23 |
이차만 | 김희태 | 1990.7.3 ~ 1990.8.8 |
위 표를 바탕으로 90년 이후 감독 혹은 코치 자리에 2회 이상 이름을 올렸던 분들의 명단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적어도 허정무 감독은 축구협회에서
가장 자주 부르는(?) 감독이다. (코치였다가 감독대행으로 이름을 올렸던 김평석, 박성화 감독은 제외하였다.) 2000년 이후의 감독들 이름을 살펴보면 (박성화 감독대행을 제외한다면) 허정무 감독의 이름 사이에 외국인 감독들만 끼워 넣은 형국이다. 과연 우리나라에 허정무 감독 외에는 감독직을 수행할 만한 능력있는 사람들이 없었던 것일까.
박종환 4회 (감독 4회)
고재욱 2회 (감독 2회, 모두 단기간)
김호 3회 (감독 3회)
허정무 6회 (감독 3회 코치 3회)
정해성 3회 (코치 3회)
핌 베어벡 2회 (감독 1회 코치 1회)
최만희 2회 (코치 2회)
김희태 2회 (코치 2회)
기술위원회와 대표팀 감독의 관계는 서로 보완하기 위해 존재하는 만큼 어쩌면 동반사퇴가 타당할지도 모른다. 사실상 현재의 축구대표팀 부진은 정보 수집이나 전력 분석 등의 부분보다는 전술적인 부족함을 많이 지적받는 만큼 기술위원장의 사퇴는 뭔가 어색하다. 거기다 조중연 전 기술위원장은 사퇴한 이듬해 축구협회 전무로 자리를 잡았다. 일부 축구팬들은 이번 이영무 기술위원장이 퇴진 후 어디에서 자리를 잡을지 벌써 관심을 갖고 있다.
허정무 감독에 대해 개인적인 비난을 쏟아놓고 싶지는 않다. 전남 드래곤즈에서도 국가대표팀에서도 보여준 것은 부족했지만, 오히려 더 많은 문제는 축구협회에 있어 보인다. 그리고, 분명히 나보다 축구를 더 많이 아는 분임에는 틀림없다. 축구협회의 감독 선임은 늘 과정에서 문제를 지적받아 왔음에도 나아지지 않고 있다. 한국 축구의 비전이 없이 당면한 일정들만 바라보고 대표팀 감독을 선임한다면 국가대표팀의 발전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