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월 9일 화요일

고종수와 이관우

한국의 천재 미드필더라 불리던 선수들을 살펴 보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그 이유는 한국에서 천재 미드필더라는 태그를 달고 있는 모든 선수들이 "비운의 스타"였거나 아직 그렇기 때문이다. 그들이 천재였기 때문에 비운이지는 않았겠지만, 공교롭게도 다들 굴곡이 있었다.

한국에서 천재 미드필더로 불렸던 선수들은 김병수, 최문식, 윤정환, 고종수, 이관우 정도였다. 이들이 천재로 불렸던 가장 큰 이유는 한국에서 보기 힘든 타입의 선수들이었기 때문이다. 하나같이 탁월한 기술을 갖고 있었다고들 이야기한다.

비운의 천재 김병수, 테크니션 최문식, 꾀돌이 윤정환, 게으른 천재 고종수, 유리몸 이관우. 이 다섯 명의 천재들 가운데 오늘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은 고종수와 이관우에 관한 이야기이다.

대전 시티즌 팬들에게 애증의 선수를 꼽으라면 열에 아홉은 이관우를 꼽을 것이고,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팬들에게 꼽으라면 역시 고종수를 꼽을 것이다. 이 두 선수가 자리를 바꾸었다. 이관우는 수원의 주장이 되어 대전을 향해 창을 겨누고, 수원에서 방출됐던 고종수는 이제 대전의 10번이 되었다. (물론, 고종수가 올 시즌 수원과의 경기에 뛸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아직은 몸을 만드는 것이 선결과제다.)

이관우의 인생에서 가장 큰 변화를 겪은 해를 말하자면 아무래도 1997년이 되어야 할 것 같다. 당시 국민적 기대를 받던 청소년 대표팀의 공격수였던 이관우는 세계 청소년 대회 이후 하향세를 그렸다. (당시 경기 결과: 대 남아공 0-0, 대 브라질 3-10 패, 대 프랑스 2-4 패) 대학 시절의 교통사고, 2000년 대전 시티즌 입단 후에도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리다가 2001년에는 다시 무릎 연골이 파열되는 부상으로 1년 반을 쉬었다.

입단 후 한 시즌을 무난히 뛰는 것을 보여 주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이관우는 대전 시티즌 팬들의 지지를 받는 선수였다. 이관우라는 이름에 대해 거는 기대는 대전의 팬들에겐 엄청난 것이었고, 결국 그의 재기는 2003년 시즌을 대전 시티즌이 잘 치를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다. 후반전이 시작될 때쯤엔 항상 이관우의 등장을 기다리는 것이 2003년의 대전 팬들이었고, 그가 교체를 위해 몸을 풀 때쯤이면 팬들의 심장은 두근거렸다.

2003년 이후 이관우는 대전 시티즌의 아이콘이 되어 있었다. 팀이 키우는 프랜차이즈 스타였고, 한국프로축구를 잘 모르는 누군가에게 대전 시티즌을 소개 할 때, 팬들은 이관우를 자랑하곤 했다. 대전의 팬들은 이관우가 입단한 후 3년을 기다려 한 경기의 절반이나마 뛰는 것을 보았고, 5년을 기다려 풀타임 출장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6년이 지나자 이관우는 수원 삼성으로 이적하였다.

고종수는 수원 삼성의 전 감독인 김호 감독이 키운 대표적인 선수 중 하나였다. 팀에서 성장했고, 팀의 전성기를 이끌던 고-데-로(고종수, 데니스, 산드로) 트리오의 한 명이었고 그의 톡톡 튀는 행동과 자신감 그에 걸맞는 실력은 많은 사람들을 축구팬이(수원 삼성의 팬이) 되게 만들었다. 지금도 고종수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하는 축구팬들 중에 고종수 때문에 축구를 보기 시작했다는 말을 하는 경우를 종종 보곤 한다.

이관우나 고종수와 같은 한국에서 흔히 보지 못하던 "기술"을 갖고 있는 선수들은 팀이 어려울 때 뭔가를 해줄 것 같은 기대를 갖게 만드는 선수들이다. 이 선수들이 중요한 이유는 경기가 끝날 때까지 희망을 잃지 않고 계속 팀을 응원하게끔 만든다는 것이다.

고종수와 이관우는 프로 무대에서 전성기를 함께 지내지 못했다. 고종수가 리그에서 주목받고 많은 팬들을 몰고 다닐 때 이관우는 부상에 시름했고, 이관우가 리그에 돌아온 2003년 이후에 고종수는 교토퍼플상가, 수원 삼성, 전남 드래곤즈로 팀을 옮겨 다녔지만 경기에는 거의 뛰지 않았다.

이관우는 그가 재활하는 동안 돌봐 줬던 대전을 떠나 고종수의 팀이었던 수원 삼성의 주장이 되었지만, 고종수는 연습생이나 마찬가지인 신분으로 이관우의 팀이었던 대전 시티즌에 합류했다. 이들의 부침은 묘하게 엇갈리고, 이들의 행보는 묘하게 상반된다.

올 시즌의 대전 시티즌과 수원 삼성의 맞대결은 여러모로 이슈가 많게 되었다. 수원 삼성의 대 대전 시티즌 전적이 4년째 무승이라는 것, 차범근의 황태자인 수원의 이관우와 준연습생인 대전의 고종수, 수원에서 이적해 온 조재민과 황규환, 몇 년간 수원 삼성에 대한 적대감을 숨기지 않았던 퍼플크루. 이래저래 올 시즌이 기대되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두 선수의 동영상을 보도록 하자.

이관우 동영상


고종수 동영상



ps 1. 이관우는 시리우스, 고종수는 앙팡테리블이 훨씬 많이 불리는 별명이다.

ps 2. 최문식, 윤정환, 이관우, 고종수는 모두 최윤겸 감독과 관계를 맺게 되었다. 최문식과 윤정환은 부천 SK에서, 이관우와 고종수는 대전 시티즌에서.

ps 3. 축구협회의 인터뷰 글에서 소개된 내용인데, 최문식은 김병수를, 윤정환은 최문식을, 고종수는 윤정환을 존경하는 선배로 꼽았다고 한다. 이관우 역시 윤정환을 가장 존경하는 선수로 꼽았다. 그네들끼리만 통하는 뭔가가 있나 보다.

ps 4. 현재 최문식은 포항 유소년 팀의 감독이 되었고, 고종수는 대전과 계약했고, 이관우는 수원 삼성의 주장이 되었다. 윤정환은 일본의 2부리그 팀인 사간도스에서 뛰고 있다. 김병수 전 포항 코치의 현 상황은 알 수 없었다.


- 읽어 볼 만한 글들
김병수 (손병하님의 글, 김유석님의 스타클래식 1편, 2편, 축협인터뷰 1편, 2편)
최문식 (홈페이지, 축협인터뷰 1편, 2편, 3편, 4편)
윤정환 (한겨레 오늘의 메일)
이관우 (디트뉴스 인터뷰, 축협인터뷰 1편, 2편, 손병하님의 글, 주성욱님의 글)
고종수 (안타깝게도 고종수에 관한 글은 너무 많다. 짧게 읽어 볼 만한 글을 추천해 주시면 고맙겠다.)

2 개의 댓글:

익명 :

김병수 코치는 지난 6월경에 개인적인 사정으로 사임했다고 하네요.(포항 홈페이지)

Joongsoo :

아. 그렇군요. 나라목수님은 데이타뱅크십니다. 나라목수님 블로그에 있는 김병수 선수에 대한 글도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