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7월 4일 금요일

허정무 감독을 지키려는 기술위원회, 2000년의 재현?

국가대표팀의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기술위원회 전원이 사퇴했다. 기술위 총사퇴는 축구팬들의 기억 속에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기사 제목이리라. 92년 처음 기술위원회가 생긴 이래 많은 기술위원들이 있었지만, 그 중 두 번은 놀랍게도 허정무 감독을 지키기 위해 사임했다.

허정무 감독을 지키기 위해 처음으로 사퇴했던 기술위원장은 조중연 현 축구협회 부회장이다. 2000년 올림픽 대표팀과 국가대표팀을 동시에 맡았던 허정무 감독은 올림픽 8강에 실패하며 여론의 뭇매를 맞고 사임의사를 밝혔다. (관련기사) 그러나 대표팀의 부진을 책임지겠다며 기술위원회는 사퇴하겠다는 허정무 감독의 유임을 결정하고 일괄 사퇴하고 만다. (관련기사) 그러나 기술위원회의 이런 바람에도 불구하고, 허정무 감독은 2000년 아시안컵 3,4위전에서 사우디아라비아에 패하고 2000년 11월 13일 끝내 사임하였다. (관련기사) 만일 이 때 아시안컵에서 괜찮은 성적을 거뒀더라면 우리는 히딩크 감독을 데려올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번 축구협회 기술위원회의 사퇴를 지켜보는 것이 낯설지 않은 것은 바로 2000년의 기억 때문일 것이다. 그 이후에는 기술위원회만 총사퇴하며 감독을 유임시켰던 사례는 없었던 걸로 기억된다. 감독의 퇴진과 함께 기술위원회가 동반 사퇴했던 것이 그간 한국 대표팀의 운영방식이었던 데 비춰 이번 일은 매우 이례적이다. 더군다나, 이런 일은 모두 허정무 감독 시절에만 일어났다는 사실에 대해 어떤 해석을 내려야 할지 궁금하다.

허정무 감독은 2007년 말 대표팀 감독 선임 때부터 잡음이 많았다. 허정무 감독의 실적으로 보아 대표팀 감독직을 다시 맡기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특히, 2000년의 아시안컵에서 허감독에 대한 엄청난 반발을 생각한다면 뭔가 아직 보여준 게 부족하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축구협회 내 학연간의 파벌 문제 등을 거론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정확히 판단할 만한 정보를 갖지 않은 탓이다. 그러나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다음은 1990년 이후 우리나라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의 목록이다.

감독 코치 재임기간
허정무 정해성,박태하 2007.12.7 ~ 현재
핌 베어벡 압신 고트비, 홍명보 2006.6.26 ~ 2007.7.29
딕 아드보카트 핌 베어벡 2005.10.1 ~ 2006.6.26
요하네스 본프레러 허정무 2004.6.24 ~ 2005.8.23
박성화 (감독대행) 2004.4.28 ~ 2004.6.9
움베르투 코엘류 박성화 2003.3.1 ~ 2004.4.19
거스 히딩크 박항서 2001.1.1 ~ 2002.6.30
허정무 정해성 1998.10.14 ~ 2000.11.13
김평석 (감독대행) 1998.6.22 ~ 1998.6.25
차범근 김평석 1997.1.8 ~ 1998.6.21
박종환 최만희 1996.7.8 ~ 1997.1.7
박종환 정해성 1996.2.15 ~ 1996.7.7
고재욱 박경훈 1995.10.20 ~ 1995.10.30
정병탁 조윤환 1995.9.16 ~ 1995.9.30
허정무 이장수 1995.8.1 ~ 1995.8.12
박종환 최만희 1995.4.26 ~ 1995.7.31
아나톨리 비쇼베츠 김성남 1994.7.24 ~ 1995.2.26
김호 허정무 1993.11.30 ~ 1994.7.23
김호 유기흥 1992.11.10 ~ 1993.10.29
김호 조광래 1992.7.8 ~ 1992.11.9
고재욱 허정무 1991.5.22 ~ 1991.7.27
박종환 김희태 1990.8.9 ~ 1990.10.23
이차만 김희태 1990.7.3 ~ 1990.8.8
(출처: 위키피디아 )

위 표를 바탕으로 90년 이후 감독 혹은 코치 자리에 2회 이상 이름을 올렸던 분들의 명단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적어도 허정무 감독은 축구협회에서 가장 자주 부르는(?) 감독이다. (코치였다가 감독대행으로 이름을 올렸던 김평석, 박성화 감독은 제외하였다.) 2000년 이후의 감독들 이름을 살펴보면 (박성화 감독대행을 제외한다면) 허정무 감독의 이름 사이에 외국인 감독들만 끼워 넣은 형국이다. 과연 우리나라에 허정무 감독 외에는 감독직을 수행할 만한 능력있는 사람들이 없었던 것일까.
박종환 4회 (감독 4회)
고재욱 2회 (감독 2회, 모두 단기간)
김호 3회 (감독 3회)
허정무 6회 (감독 3회 코치 3회)
정해성 3회 (코치 3회)
핌 베어벡 2회 (감독 1회 코치 1회)
최만희 2회 (코치 2회)
김희태 2회 (코치 2회)
기술위원회와 대표팀 감독의 관계는 서로 보완하기 위해 존재하는 만큼 어쩌면 동반사퇴가 타당할지도 모른다. 사실상 현재의 축구대표팀 부진은 정보 수집이나 전력 분석 등의 부분보다는 전술적인 부족함을 많이 지적받는 만큼 기술위원장의 사퇴는 뭔가 어색하다. 거기다 조중연 전 기술위원장은 사퇴한 이듬해 축구협회 전무로 자리를 잡았다. 일부 축구팬들은 이번 이영무 기술위원장이 퇴진 후 어디에서 자리를 잡을지 벌써 관심을 갖고 있다.

허정무 감독에 대해 개인적인 비난을 쏟아놓고 싶지는 않다. 전남 드래곤즈에서도 국가대표팀에서도 보여준 것은 부족했지만, 오히려 더 많은 문제는 축구협회에 있어 보인다. 그리고, 분명히 나보다 축구를 더 많이 아는 분임에는 틀림없다. 축구협회의 감독 선임은 늘 과정에서 문제를 지적받아 왔음에도 나아지지 않고 있다. 한국 축구의 비전이 없이 당면한 일정들만 바라보고 대표팀 감독을 선임한다면 국가대표팀의 발전은 없을 것이다.


2008년 6월 22일 일요일

히딩크는 4강 징크스를 넘을 수 있을까?

22일 새벽(한국시간)에 있었던 네덜란드와 히딩크의 대결은 여러가지 흥미로운 점을 담고 있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러시아가 토탈사커의 원조인 네덜란드를 상대로 경기를 펼친다는 점, 반 바스텐 감독이 20년 전 네덜란드를 유로피언 챔피언쉽에서 우승에 올려놓은 이후 다시 감독으로 같은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 그리고 한 가지 더 주목해야 할 점은 네덜란드와 히딩크는 1988년 이후 국제경기에서 우승을 거둔 적이 없다는 점이다.

흔히들 네덜란드를 강력한 4강 후보, 만년 4강 등으로 이야기를 하는 데는 바로 네덜란드의 강력한 공격력에도 불구하고, 결승까지 가지 못했던 네덜란드의 20년에 걸친 축구사가 있었다. 1998년 월드컵에서 히딩크 감독이 이끌던 네덜란드가 한국을 5:0으로 꺾으면서, 많은 한국의 축구팬들은 졌지만 강력한 공격축구에 매혹되어 버렸다. 네덜란드는 많은 한국팬들의 응원을 받았지만, 결국 4강에서 브라질에게 페널티킥까지 가는 접전 끝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이것이 최근의 축구팬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네덜란드와의 첫 인연이자, 네덜란드의 4강 역사였을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히딩크 감독 역시 네덜란드 축구와 똑같은 4강 징크스를 겪어 왔다는 점이다. 둘 다 1988년 이후로 말이다. 다음 표는 히딩크 감독과 네덜란드가 겪어 온 4강 징크스의 역사이다. (왼쪽이 히딩크 감독, 오른쪽이 네덜란드 축구의 88년 이후 결과)

네덜란드와 히딩크 감독의 국제경기 4강 징크스에 관한 기록

연도 (시즌)
대회
결과
1987-1988
유러피언 컵
우승
1988-1989
유러피언 컵
8강
1998
프랑스 월드컵
4강
2002
한국-일본 월드컵
4강
2004-2005
UEFA 챔피언스 리그
4강
2005-2006
UEFA 챔피언스 리그
16강
2008
유로 2008
4강(진행 중)
연도
대회
결과
1988년
유로 1988우승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16강
1992년유로 19924강
1994년미국 월드컵8강
1996년유로 19968강
1998년프랑스 월드컵
4강
2000년유로 20004강
2004년유로 20044강
2006년독일 월드컵
16강
2008년유로 20088강

히딩크 감독이 PSV 아인트호벤을 이끌고 1988년 여름에 우승했던 유러피언 컵은 UEFA 챔피언스리그의 전신으로, 92년 이후에는 UEFA 챔피언스리그로 발전되었다. 히딩크 감독의 기록은 1998년 이후 유러피언 컵, 챔피언스리그, 월드컵, 유로피언 챔피언스 컵(EURO) 등을 모아 정리하였다.

굳이 이것을 징크스라는 이름을 붙여야 하는지는 의심스럽다. 다만, 흔히들 이야기하는 네덜란드 축구의 약점은 바로 토너먼트에서의 약점이라는 것. 토탈사커로 일컬어지는 네덜란드의 축구 스타일은 아무래도 선수들의 움직임이 많아질 수밖에 없고, 토너먼트와 같은 단기전에서는 후반으로 갈 수록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이 때문에 좋은 경기력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 이런 체력 저하 현상은 이미 2002년 월드컵 때 한국 대표팀이 경험했던 것이고, 러시아 역시 네덜란드와 연장전까지 가는 경기를 치르면서 많은 체력 고갈이 예상되는 바다. 이번에는 다음 경기까지 5일이나 남아 있어 체력적인 부분에서의 영향은

일단 네덜란드는 8강에서 떨어지면서 4강 이상 올라가지 못하는 징크스를 이어가고 있다. 히딩크의 러시아는 4강 징크스를 뛰어넘을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팀의 분위기가 한껏 올라 있는 만큼 히딩크 감독의 결승 진출은 어느 때보다도 유력해 보이지만,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승자 중에서 어느 팀이 올라오는지에 많은 영향을 받을 것처럼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조심스레 이탈리아와 러시아의 대결을 예상하고, 이탈리아가 러시아와의 대결에서 이기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해 본다. 이탈리아는 토너먼트에서 유난히 강한 저력을 보여 왔다.

UPDATE) 예상이 빗나가 러시아의 상대는 스페인으로 결정됐다. 조별리그에서 러시아에 대패를 안겨줬지만 여전히 승부의 향방은 오리무중이다. 히딩크 감독이 한 번 상대했던 팀에 대해 어떤 대책을 세웠을지가 중요하고, 분위기가 상승세인 러시아의 호성적이 기대되는 부분도 있다.

한 가지 더 재미있는 것은 스페인도 징크스의 팀이라는 것. 스페인은 이탈리아를 88년동안 이기지 못했던 징크스에도 불구하고 4강에 진출했고, 24년 만에 처음으로 4강에 오르면서 징크스 브레이커가 되었다. 스페인이 기세를 몰아 올라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어쨌거나 독일을 제외하고 최근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던 팀들로 4강이 채워졌다는 것은 유로 경기를 바라보는 많은 팬들에게 흥미진진한 결과가 될 것으로 보인다.



2008년 6월 10일 화요일

유로 2008, 네덜란드의 첫골은 오프사이드?

유로 2008에서 죽음의 조로 불리는 C조의 경기가 오늘(6월 10일) 시작됐다. 2006년 월드컵 우승팀 이탈리아. 1998년 월드컵 우승, 2000년 유로 2000 우승, 2006년 월드컵 준우승에 빛나는 프랑스. 영원한 4강팀, 강력한 화력의 네덜란드. 이 세 팀이 한 조에 편성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유로 2008에서 가장 잔인한 신의 장난이라 불릴 만 하다.

오늘 가장 주목받는 경기는 네덜란드와 이탈리아의 경기. 네덜란드는 30년간 이탈리아를 이기지 못했다는 역사에서도, 유난히 공격적인 축구를 구사하는 네덜란드와 강력한 수비의 대명사로 불리는 카데나치오 이탈리아의 경기는 예선 최고의 빅매치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네덜란드는 전 세계 축구팬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팀 중 하나이다. 토탈 사커가 시작된 곳, 히딩크식 토탈 사커가 우리나라에서는 상당히 수비적이었지만, 네덜란드의 토탈 사커는 모두 공격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처럼 모든 선수들은 상대편 골대를 향해 질주한다. 네덜란드의 경기는 절대 지루하지 않다는 것을 많은 축구팬들은 알고 있다.

개인적인 선호도에도 불구하고 반니스텔루이의 발을 거친 공이 이탈리아의 골대를 흔들 때는 "오프사이드"라는 말이 튀어나올 수밖에 없었다. 당연한 듯 보였던 오프사이드 판정은 끝내 내려지지 않았고, 이탈리아는 1:0으로 끌려가며 경기를 네덜란드에게 내주고 만다. 그리고, 경기가 끝날 때까지 이탈리아가 오심으로 경기를 밀린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 피파의 경기규칙("Laws of the Game") 을 다시 읽어보기 전까지 말이다.

먼저 골이 들어간 상황을 살펴보자. 스네이더가 떄린 강력한 슛을 반니스텔루이가 잘라 먹으면서 골을 만들어냈다. 첫 번째 그림에서 보듯이 스네이더가 슛을 하는 시점에 이미 반니스텔루이와 이탈리아 골대 사이에는 골키퍼 한 명밖에 없었고, 이것은 오프사이드 위치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스네이더의 강력한 슛

반니스텔루이에게 연결되는 스네이더의 슛


반니스텔루이의 골

반니스텔루이의 골

반니스텔루이의 골

그런데 왜 이 골에 대해 오프사이드가 선언되지 않았을까? 위 그림에서 이탈리아 선수 중 한 명이 엔드라인 바깥에 누워 있는 장면이 보이는데 바로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가 오프사이드의 여부를 판단하는 핵심이다. 이 상황과 관련된 규정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LAW 11. 오프사이드(OFFSIDE), 다른 하나는 LAW 3. 선수의 수(THE NUMBER OF PLAYERS)에 관한 규칙이다. 먼저 오프사이드에 관한 규칙을 살펴보자.

If a defending player steps behind his own goal line in order to place an opponent in an offside position, the referee shall allow play to continue and caution the defender for deliberately leaving the field of play without the referee’s permission when the ball is next out of play.

수비를 하는 선수가 상대 선수를 오프 사이드 포지션에 빠뜨리기 위하여 자신의 골라인 뒤쪽으로 이동하면 심판은 계속 경기를 진행할 수 있고, 다음 번 공이 멈추었을 때 (즉, 아웃 오브 플레이 상태가 되었을 때) 심판의 허락 없이 고의적으로 경기장을 떠난 데 대해 주의를 줄 수 있다. (피파 경기 규칙 102페이지)
다음은 LAW 3. THE NUMBER OF PLAYERS 중 일부분이다. 심판이 허락한 경우가 아니라 경기를 하다가 일시적으로 벗어난 경우라면, 경기의 일부로 보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If a player accidentally crosses one of the boundary lines of the field of play, he is not deemed to have committed an infringement. Going off the field of play may be considered to be part of a playing movement.

선수가 우연히 경기장의 경계선을 넘었을 경우, 그 선수는 규칙을 위반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 경기장을 벗어난 것은 경기를 하면서 생기는 움직임의 하나로 판단할 수 있다. (피파 경기 규칙 64페이지)
즉, 경기장에서 선수는 고의로 오프사이드를 만들기 위해 경기장을 벗어나서도 안되며, 경기장을 피치 못한 상황으로 벗어났다 하더라도 그의 움직임은 경기의 일부이므로 오프사이드를 만들 수 있는 상황을 만들 수 없다.

그러나 여전히 논란의 여지는 있다. 오프사이드 규정 자체만 살펴 본다면 이 상황을 오프사이드 위치로 판단하더라도 무리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 LAW 3의 내용은 고의적으로 떠나지 않았으므로 주의를 줄 필요가 없다는 쪽의 이야기에 가깝다. 그리고, 오프사이드 규정에서는 고의적으로 떠난 상황에서 경기를 지속하라는 이야기이므로, 이 상황에 딱 맞는 규정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다음은 오프사이드 위치에 관한 정의.
A player is in an offside position if:
  • he is nearer to his opponents’ goal line than both the ball and the second last opponent

다음의 경우에 선수는 오프사이드 위치에 있다.
  • 그 선수가 두 명 미만의 상대편 선수와 공 모두 보다 상대 골라인에 가깝게 있을 때.
[UPDATE] 좀 더 이해하기 쉬운 오프사이드 위치의 정의를 덧붙여 둔다.
  • 공격수가 공보다도 그리고, 최종 수비수 앞쪽에 있는 수비수(the second last)보다 골라인 가깝게 위치 할 때 (by 익명님)
  • 선수가 그의 상대편 골 라인으로부터 볼과 최종의 두번째 상대편 선수보다 골 라인에 더 가까이 있을 때 (from 대한축구협회)

축구는 다른 스포츠에 비해 규칙의 수가 무척 적다. 몇 가지 룰로만 설명이 가능한 스포츠라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이렇게 복잡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혼동할 수 있는 여지가 존재한다. 그 짧은 시간에 적절한 판단을 내리는 것은 심판이 책임져야 할 일인 듯 하다.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이번 판정을 오심으로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개인적으로는 매우 적절한 판정으로 생각된다.


2008년 4월 28일 월요일

강원도민구단, 강원도의 힘을 보여줄 수 있을까

거의 3년 이상의 긴 기간동안 창단을 위해 노력해 온 강원도민구단이 드디어 그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내년부터 K리그에 합류한다고 하니 이제 15개 구단 체제로 접어들게 되었다. 구단 수가 늘어나면서 가져올 수 있는 여러가지 좋은 변화도 기대되는 상황이다. 이제 드디어 우스운 모양새의 컵대회를 개혁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도 해 본다.

강원도민구단도 대전이나 인천, 대구, 경남과 같이 시민구단 형태로 운영될 예정이라 한다. 시민구단이냐 그렇지 않으냐의 문제가 매우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리그 전체의 구성을 놓고 봤을 때는 좀 더 생존에 필사적인 구단이 하나 더 늘어난다는 것은 장기적으로 바람직한 일이라 평가해 본다. 그러나 문제는 상존해 있다. 강원도민구단의 잠재적인 약점과 문제점을 짚어 보기로 하자.

1) 시민주(도민주) 공모로 충분한 초기 자본을 모집할 수 있을까
이전의 시민주 공모 현황을 살펴보자. 경남, 인천, 대구는 나름대로 괜찮은 공모 성적을 기록했지만, 대전은 기대보다 저조한 성적을 거뒀다. 왜 그런지를 굳이 말하긴 어렵지만, 전통적으로 축구는 제조업과 큰 관련을 맺어 왔다. 맨체스터가 철강도시였던 것처럼 포항도 좋은 축구팀을 갖고 있다. 경남은 STX, 인천은 GM대우가 밀어주고 있다. 시민구단이긴 하지만, 기업이 갖고 있는 지분이 굉장히 크다.

제조업을 갖고 있던 경남과 인천은 매우 성공적인 시민주 공모를 마칠 수 있었지만, 대전은 목표액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에 만족해야 했다. 대구의 경우에는 대구은행이라는 큰 돈줄이 있었던 데다, 대구시에서 각급 산하기관 및 공무원들에게 반 강제적으로 주식청약을 받으면서 괜찮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이제 강원도의 선택이 궁금해진다. 당장은 팀과 사무국 구성이 급하다지만, 장기적으로 청약전략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그 초기자본으로 적어도 5년은 버틸 수 있어야 한다. 강원도라는 브랜드는 좋은 관광지로서 가치를 갖고 있을지 모르지만, 스폰서를 충분히 유치할 만큼의 시장가치를 가지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런 만큼 공모의 성공은 절박한 상황이다. 강원도에는 많은 스키장과 리조트, 관광 시설 등이 있는 만큼 이들과의 관계 설정이 매우 중요해 보인다.


2) 강원도 체육회의 힘은 약해져야 한다
지금 당장 강원도 체육회가 큰 힘을 갖고 있다는 소리는 아니다. 그러나, 창단과 운영 과정에서 체육회의 힘은 큰영향을 미친다. 다음 표를 보시라. 지자체의 체육회가 낮은 두 곳, 대구와 인천은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대전시티즌
인천유나이티드
대구FC
경남FC
대주주
(5%이상)
대전광역시체육회: 40.62%
(주)진로: 5.05%
인천광역시체육회: 31.57%
대우자판(주): 6.02%
지엠대우오토앤테크놀로지(주): 5.96%
대구시체육회: 12.57%
(주)대구은행: 9.19%



경상남도체육회 54.02%




소액주주
36.17%
(법인 15.19%,
개인 20.98%)
35.01%
(법인 12.25%,
개인: 22.76%)
66.58%
(법인 28.54%,
개인: 38.04%)
45.98%
(법인: 19.37%,
개인: 26.61%)

그 외
18.16%
21.44% 11.66%

이 표는 바로 시민구단들의 지분 구성이다. 경상남도 체육회는 50% 이상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데, 이것은 시민주를 공모하던 시기 STX와 몇몇 지역 기업들이 청약후 경남체육회에 기부체납했기 때문이다. 대전광역시 체육회 역시 많은 소규모 기업들의 기부체납에 의해 40% 이상의 지분율을 보이고 있다.

어쨌거나, 경남은 이전에 사장 선임 과정에서 이사회에서 큰 소동이 있었고, 알력다툼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던 적이 있다. 거기다 박항서 감독의 경질 과정에 대해서도 여러모로 잡음이 있었다. 대전 역시 몇 차례 사장의 선임 과정이 그리 매끄럽지 못했고, 늘 대전시장에 의해 임명되다 보니 "전문 경영인"보다는 낙하산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대구는 최초로 사장 공모를 통해 대구FC의 사장을 선임했고, 인천은 지엠대우의 강력한 인맥 덕분인지, 부산에서 축구팀을 성공적으로 운영했던 적이 있던 안종복 단장이 팀의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체육회라는 곳은 지자체장의 입김이 매우 강하게 미치는 곳이다 보니 구조적으로 합리적인 팀 경영을 어렵게 하는 부분이 있다. 만약 강원도민구단 역시 강원도 체육회의 지분이 너무 큰 상황이 발생한다면, 성공적인 발전은 장담키 어렵다.


3) 축구는 축구도시에서!

부산은 축구도시였고 야구도시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었을까? 야구는 사직 축구는 구덕이라는 부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축구장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 사는 사람들에 따라 마케팅 대상을 선정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게 된다. 부산 아이파크 팬들은 종종 부산 아시아드 경기장을 버리고, 구덕으로 돌아가자는 목소리를 내곤 한다.

춘천, 원주, 강릉에서 리그 경기를 분산 개최하겠다는 강원도지사의 말은 축구를 모르는 사람의 원론적 발언으로 인정하고 싶다. 절대 그렇게 운영해서는 안된다. 축구를 보는 팬들은 먼 거리를 이동해 다닐 만큼 열정을 갖기도 하지만, 우리집 옆에서 일어나는 큰 함성에 더 반응하는 법이다. 듣기에는 강릉이 매우 축구 열기가 높다고들 한다. 그러면 고민할 것이 뭐가 있을까. 강릉을 강원도민구단의 연고지로 설정해야 바람직하다.

몇 년 운영해본 뒤에 이게 아니다 싶어 바꿔도 되지 않느냐구? 그 때는 이미 도민들의 돈 몇 십억이 날라간 상태일텐데 이런 안일한 반응을 해서는 안된다. 물론 강원도의 다른 지역에 사는 분들도 축구를 보고 싶어하는 분들 많을게다. 그렇지만, 이건 공공서비스가 아니라 하나의 비지니스이므로 철저히 시장분석을 할 필요가 있다. 축구팀에 가장 중요한 것은 매주 주말마다 경기장을 꽉꽉 메워 줄 관중들이다.


나름대로 잠재적인 어려움을 분석해 보았지만, 늘 우리처럼 우매하고 평범한 축구팬들의 목소리는 저 높은 곳까지 달하지 못하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모쪼록 이런 걱정이 기우이길 바라는 마음, 그리고 강원도민구단의 성공적인 발전을 바라 본다. 강원도의 힘을 강원도민구단을 통해 느낄 수 있었으면 한다.

2008년 4월 23일 수요일

축구와 관련된 논쟁에서 가장 짜증나는 글

축구를 보고 즐기는 방법은 다양하다. 마치 애니메이션을 즐기는 매니아들의 방식만큼이나 다양하다. 논평하고, 수집하기도 하고, 직접 뛰면서 선수들의 느낌을 가져본다. 개인적으로 유난히 축구를 즐기는 한 가지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축구와 관련된 각종 데이터를 보거나 다른 이들의 글을 읽는 것이다. 가끔 축구를 하기도 하지만, 이제야 알게 된 것은 직접 하는 것보다 축구를 보고 글을 읽는 것이 훨씬 즐겁다는 것이다.

축구 커뮤니티는 축구를 좋아하는 이들이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무언가를 제공하는 곳이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깊이있는 분석을 종종 발견할 때면 글을 읽는 즐거움을 느끼기도 한다. 요즘은 예전의 축구논객들은 어디론가 숨어버린 느낌이다. 그들은 객원기자가 되었거나, 전업기자가 되었거나, 혹은 어디론가 잠수해 버렸다. 그리고 직접 축구팀을 만들고 발전시키겠다며 뛰어든 이도 있다.

축구는 많은 논쟁거리를 낳기도 하는 스포츠이기도 하다. 선수의 영입과 퇴출, K리거와 J리거와 관련된 이슈들, 올림픽 팀과 국가대표팀 차출에 관한 얘기들, 선수의 이적 등등.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관심거리는 K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의 외국진출에 관한 것이리라. 박지성과 이영표로 촉발된 외국리그에 대한 관심은 최근의 김두현에까지 이어졌다. 우울해 보이는 설기현, 이동국, 이영표와 다시 고공행진 중인 박지성, 조심스런 기대를 갖게 하는 김두현. 아, 잊어버릴 뻔 했는데, 조재진도 있었다.

그들의 이적에 관한 얘기를 하는 것은 매우 재미있다. 이영표가 다시 아인트호벤으로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영표가 AS로마로 이적 시도를 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식의 얘기는 나처럼 축구를 글로 즐기는 사람들에게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 준다. 이적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 경쟁자나 팀의 성향, 감독의 호불호 등을 얘기하다 보면 자연스레 축구의 다른 부분을 이해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항상 이런 논쟁에서 종지부를 찍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의 논리는 간단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선수들의 생각이고, 그들의 결정이다.'

아, 맞다. 선수들은 축구를 생업으로 하는 사람들이며, 그들에겐 가족과 자신의 미래가 달려 있는 문제다. 그러므로 당연히 그들의 선택이 가장 중요한 것이고, 이영표와 설기현, 이동국은 자신의 미래를 결정할 자격이 있다. 그런데, 왜 이런 얘기를 해야 할까? 여지껏 아무도 몰랐기에 알려줘야 할 사실일까? 이런 결론에 도달하면 다같이 좋은 결론이라며 박수쳐 줘야 하는 것일까.

혹시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논쟁이 골치아프고 시끄러운 것이므로, 빨리 종결지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스럽다. 토론, 의사소통, 교환, 논쟁은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고 더 나은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그리고, 종종(자주는 아니다) 좋은 결론으로 마무리지어질 때도 있다. 결론이 내려지기 어려운 주제는 토론의 가치가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면 우리는 더 발전하고 나아갈 수 없다. 민주주의는 바로 그런 것이다. 시끄럽고 귀찮고 골치아픈 것. 다양한 목소리를 여기저기서 외치고 부르짖어서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것.

축구로 인해 민주주의가 얼마나 발전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나는 여전히 축구에 있어서도 서로 많은 얘기를 하고 의견을 교환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왜냐면 이런 방식을 통해서도 축구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보기 싫고 의미없는 논쟁처럼 느껴진다면, 슬며시 무시하고 넘어간다면 어떨까. 토론이 인신공격이나 비방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대로 두어도 괜찮을 법하다.

오늘도 박지성의 와일드카드 차출을 놓고 사람들은 얘기가 많다. '차출해도 괜찮을 것이다'는 쪽과 '차출하면 선수에게 너무 무리가 될 일이다'라는 쪽으로 나뉘어 공방을 벌이고 있다. 어쩌면 축구와 관계없이 일상을 살아가는 많은 국민들에게 생소한 세상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어떤 면에선 오타쿠의 성향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 봤다. 비생산적인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이것이 많은 축구팬들이 축구를 즐기는 방식이다.


2008년 4월 8일 화요일

고종수와 대전 시티즌

어느덧 고종수는 대전의 중심에 서 있는 듯 하다. 그것이 대전 팬들의 자발적인 지지에 의한 것인지, 언론의 관심 때문인지를 짚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고종수가 대전에서 '살아나 준' 것과 대전이 고종수에게 '기회의 땅'이 되어 준 것은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일이었다.

고종수의 대전행은 그 자체로 관심을 많이 받았던 사건이었지만, 그간 부족했던 언론의 관심을 대전에 돌리게 한 결정적인 사건은 김호 감독의 부임이었다. 어쨌거나 이제 대전은 언론이 가장 많은 관심을 갖는 시민구단이 되었다. 이관우가 대전에서 아무리 좋은 활약을 펼쳤어도 국대에 거론조차 되지 못했던 것, 대전에서 이관우가 활약을 펼칠 수 있었던 이유로 김영근이라는 좋은 수비형 미드필더가 있었다는 사실 등은 제대로 언론을 타지 못했던 것을 돌이켜 볼 때 지금의 대전에 대한 관심은 과분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고종수와 대전 구단 간의 연봉 협상에 발생한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둘로 나뉘어 대립되는 양상을 보인다. 한쪽은 '재기의 기회를 줬는데도 돈만 밝힌다'고 말하고, 다른 쪽은 '고종수와 김호 감독 덕에 대전은 큰 마케팅 효과를 보고 있는데 이런 점은 생각지 못한다'고 말한다. 둘 다 맞는 말이고 있을 수 있는 의견이다. 결국 이 두 의견의 간극은 관점의 차이가 아닐까 한다.

대전의 팬으로서 좋은 선수가 뛰어 주길 바라는 것은 항상 팬들의 바람이다. 선수는 돈보다는 구단을 위해 뛰어 주기를 바라는 팬들의 마음을 충분히 어루만지지 못했던 것은 고종수측 에이전트의 미숙한 언론 플레이라 하겠다. 프로 선수들은 돈을 받고 경기를 뛰는 만큼 더 많은 연봉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비난할 수 없지만, 항상 그 돈이 나오는 곳은 팬이라는 것을 먼저 인식해야 한다. 팬들에게 지지를 받는 능력 있는 선수는 구단과의 협상에서 항상 유리하다.

프로선수들은 구단에 대한 충성심을 먼저 보일 필요가 있다. 이면에서 어떤 금전적인 협상을 벌이더라도 말이다.

언론 플레이를 통해 서로 유리한 위치를 점하려는 것은 협상에서 자주 등장하는 기법이지만, 현재 대전 구단과 에이전트의 언론 플레이는 낙제 수준이다. 당장 눈앞에 있는 연봉 협상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서로에게 흠집을 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대전구단은 고종수를 '돈만 밝히는 선수'로 만들었고, 에이전트는 대전을 '개념없는 짠돌이 구단'으로 만들어 버렸다.

각자의 입장에서 이득이 되는 쪽을 취하라. 그러나, 최대한 서로의 이미지를 깎아 내리지 말아야 한다.

또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대전과 같이 재정규모가 적은 구단의 부족한 관리 능력이다. 적은 돈으로 팀을 운영하다 보면 인력부족은 불가결한 부분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좀 더 일찍 협상을 추진하고, 일찍 차년도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다. 작년 하반기에는 이미 고종수의 폼이 많이 돌아왔음을 감지했다면 더 몸값이 비싸지기 전에, 다른 팀이 영향을 미치지 않을 때 먼저 올해의 연봉 협상을 할 필요가 있었다. 일찍 연봉협상을 시작하면 선수들도 그들을 구단이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물론, 구단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올해 광고 스폰서가 얼마나 될 지, 구단의 가용 자금이 얼마나 될 지를 예측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늘 대전에게는 광고협찬은 해가 바뀌고 나서 시의 압박이 있은 다음에야 관심있는 기업들이 주머니를 열곤 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대전만의 상황은 아니다. 많은 구단들이 내년의 광고수입을 예측하지 못한 채로 해를 넘기고 이것은 구단의 위기관리와 선수관리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해답은 '장기 스폰서 계약'이다. 1년단위로 계약을 갱신하지 말고, 3년 단위로 혹은 5년 단위로 계약을 만들면 장기적으로 자금 운용을 어떻게 해야 할지, 선수들의 적정 연봉을 어느 정도로 해야 할지 계획을 세울 수 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키 플레이어들에 대한 연봉 재협상 시기를 앞당겨 연봉 지출을 관리 가능한 상태로 유지할 수 있게 된다.

고종수의 연봉 협상 얘기를 꺼내다가 구단의 운영 문제까지 이야기를 하게 됐다. K리그의 많은 문제들은 시스템을 갖추지 못하면서 발생하곤 한다. 서로 관계없어 보이는 문제들이 연결되어 있는 경우도 매우 많다. 더 발전하는 K리그가 되기 위해서 선수들은 구단의 가치를 높여줘야 하고, 구단은 더 좋은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항상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마음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에게 돈을 쓸 수도 없고 돈을 써서도 안된다. 서로를 진정 존중할 때 좋은 관계를 맺어 나갈 수 있다.

2008년 2월 15일 금요일

아무도 지키지 않는 과기부, 정통부

이명박 정부의 조직개편안에서 해체가 예정됐던 부서들은 통일부, 여성부, 과기부, 정통부, 해수부 등이었다. 그러나 통일부는 이미 존치하는 쪽으로 의견접근을 이뤘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고, 여성부와 해수부는 통합민주당에서 지키려는 의지가 강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현상을 보면서 몇 가지 안타까운 것은 정부조직개편이 총선용 재료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미래에 대한 비젼과 사회통합에 대한 철학을 갖고 있어야 할 정부는 과학기술에 대한 의지보다는 건설, 관광, 금융에만 관심을 갖고 있는 듯 하다. 게다가, 정부의 정책을 견제하고 검증해야 할 국회는 시간에 쫓기고 총선에 목을 매면서 정작 아무도 과기부와 정통부는 지켜주지 않고 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통일부, 여성부, 과기부는 지키면서 정통부와 과기부는 협상 대상에 넣지 않는 것일까. 통일 정책, 특히 햇볕정책은 김대중정부부터 참여정부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대북 정책이었고, 이는 소위 '민주세력'에게는 정체성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부분이므로 아마도 제 1 선택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여성부는 김대중정부에 처음 생겼고, 인권위는 참여정부가 만들면서 많은 활동을 해 왔던 조직이다. 결국, 이들이 해체되거나 폐지 혹은 축소되는 것은 통합민주당으로선 사형선고처럼 보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럼, 해양수산부의 경우는 어떻게 된 것일까. 해수부와 농촌진흥청은 해당 지역 국회의원들의 반발 떄문에 주목받고 있다. 해안 지역 출신 지역구 의원들은 해수부 폐지를 방관했다가는 다음 총선에서 당장 모가지가 날아갈 판이다. 해양수산부가 건설교통부와 함께 국토해양부로 바뀌는 것은 아마도 대운하를 염두에 둔 조각이겠지만, 바닷가의 주민들은 좋은 눈빛으로 바라보기 힘들다. 안그래도 먹고 살기 힘든데 어민들을 보살펴 주던 부서가 없어지는 것을 어찌 좋게 봐줄 수 있을까.

그렇다. 현재의 협상은 모두 '표'와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현재로선 협상에서 논외가 되고 있는 정통부와 과기부는 자연스레 해체의 길을 걸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몇 년간 우리나라는 정보통신으로 먹고 살았다. 우리나라의 IT 업계들이라고 해 봐야 큰 업체들은 대부분 통신, 전자업체들이지만 많은 벤처 기업들의 태반을 차지하는 IT 업체들은 이제 정통부의 '보호'보다는 많은 다른 '산업'들과 경쟁하고 파이를 나눠 먹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것을 단순히 '경쟁'으로만 받아 들인다면 크게 문제는 없다. 그러나 yundream님의 IT산업과 신자유주의 시장체제라는 글에서 보듯이 국가의 경제는 하나의 산업에서 다른 쪽으로 급격히 구조조정을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특히, 산업으로만 시장을 바라보기에는 IT업계는 타 업계와는 다른 뭔가가 있다.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 소개해 보겠다. 우리나라 IT 업계가 시작되던 시기 H전자에서는 조직의 윗선(이사급)은 대부분 건설 출신들이 차지하고 있었고, 엔지니어들은 이들과 대화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엔지니어: (기술적으로 왜 어려운지를 설명하며) 기한을 맞추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건설출신이사: 그래? 몇 명 더 투입하면 되는데?
산업자원부가 과연 정보통신부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지는 해 봐야 아는 일이지만, 우리나라 산업이 크게 바뀌는 것은 많이 우려스럽다. 그것은 이명박 정부가 주장하는 관광이나 금융보다 그나마 IT가 국제적으로 경쟁력이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과학기술부의 경우도 살펴보자. 이공계 기피 현상에 대해 몇 년 전까지 엄청난 성토가 이뤄지던 때만 해도 과학기술인도 뭉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꽤 컸다. 그리고, 이익단체를 구성해서 정부의 정책에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어쨌거나 현재 과학기술인연합이라는 것도 생기게 되었으나, 여전히 과학기술인들은 이권단체를 구성하지 못했다. 그것은 과학기술이라는 것은 원래 장벽이 없는 분야였고, 이미 배출된 사람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의사협회나 약사협회처럼 강력한 이익단체가 되기 어려웠다.

어쨌거나 과학기술, 혹은 연구 분야에 몸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쉽게 '표'로 환산하기 어려운 특성을 갖고 있다. 이들을 보호하고 권익을 지켜준다 해서 4월 총선에서 당선된다는 보증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니, 지켜주지 않았을 때 무조건 떨어질 거란 위기감을 갖지도 못는 것이 과학기술부가 존치되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것이든 정량적으로만 평가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결국 과학기술에 투입된 비용은 물먹는 하마로밖에 보이지 않는 이유가 되고 있다. (참조: 인수위는 왜 과기부를 없애려고 할까) 기술 종속국, 기초기술은 부족한 나라, 노벨 물리학상은 영원히 나올 가능성이 없는 나라가 되어야 할까. 성과주의, 정량적 실적주의로만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의 가치를 평가한다면 우리는 앞으로 계속 이런 현실을 바꾸지 못할 것이다.

전에도 정치인들을 믿지 못했지만, 이번 정부조직개편 협상을 지켜보면서 이 나라의 장래에 대해 매우 걱정스런 기분이 되었다. 물론, 과학기술만이 혹은 정보통신만이 우리가 나아갈 길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자원없고 문화재는 태워 먹지만, 교육수준은 높은 우리나라에서 좀 더 잘할 수 있는 것은 사람으로 해먹을 수 있는 분야가 아닐까.

오늘따라 컴퓨터, 전자업계에서 경력을 갖고 있으면 영주권을 준다는 호주 기술이민정책에 괜시리 눈이 돌려진다.

2008년 1월 21일 월요일

RFC나 인터넷 드래프트를 PS로 변환하는 스크립트

RFC나 인터넷 드래프트(internet draft)는 흔히 텍스트 파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을 PS(PostScript) 파일로 변경하는 스크립트를 소개한다. 리눅스에는 보통 a2ps라는 텍스트 파일을 ps로 변경하는 명령어가 있는데, 이를 활용하여 rfc2ps 파일을 만들어 보자. (참고로, RFC는 알판란님의 포스팅에 소개된 것처럼 IETF에서 직접 PDF를 다운로드할 수도 있다.)

먼저 프롬프트에서 rfc2ps라는 파일을 만들기 위해 다음처럼 입력한다. vi가 익숙치 않은 사람은 다른 에디터를 사용해도 무방하다.

PROMPT> vi rfc2ps

파일에 다음과 같이 입력한다. 원하는 옵션에 따라 OPTIONS의 첫 줄에 있는 #을 삭제하여 출력 옵션을 변경할 수 있다.

#!/bin/bash
MINPARAMS=1
OPTIONS="-B --borders=no -1 -l 72" # 1page, no borders
# OPTIONS="-B --borders=yes -1 -l 72" # 1page, borders
# 테두리가 있도록 출력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위의 옵션을 사용하면 됨.
#OPTIONS="-B --borders=no -2 -l 72" # 2pages in 1page, no borders
# 테두리가 없고 두 페이지가 한 페이지에 들어가도록 출력하는 옵션

if [ $# -lt $MINPARAMS ]
then
echo "No parameter. Parameter should be rfcxxxx"
exit
fi

a2ps $OPTIONS $1.txt -o $1.ps

rfc2ps 파일에 실행할 수 있는 옵션을 추가한다.

PROMPT> chmod +x rfc2ps

이 커맨드를 사용하여 rfc를 변경할 때는 먼저 변환하기를 원하는 RFC를 다운로드하여 rfcxxxx.txt로 저장하고 다음의 명령어를 입력하면 된다. 확장자인 txt가 없음을 주의하시라.

PROMPT> rfc2ps rfcxxxx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