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7월 4일 금요일

허정무 감독을 지키려는 기술위원회, 2000년의 재현?

국가대표팀의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기술위원회 전원이 사퇴했다. 기술위 총사퇴는 축구팬들의 기억 속에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기사 제목이리라. 92년 처음 기술위원회가 생긴 이래 많은 기술위원들이 있었지만, 그 중 두 번은 놀랍게도 허정무 감독을 지키기 위해 사임했다.

허정무 감독을 지키기 위해 처음으로 사퇴했던 기술위원장은 조중연 현 축구협회 부회장이다. 2000년 올림픽 대표팀과 국가대표팀을 동시에 맡았던 허정무 감독은 올림픽 8강에 실패하며 여론의 뭇매를 맞고 사임의사를 밝혔다. (관련기사) 그러나 대표팀의 부진을 책임지겠다며 기술위원회는 사퇴하겠다는 허정무 감독의 유임을 결정하고 일괄 사퇴하고 만다. (관련기사) 그러나 기술위원회의 이런 바람에도 불구하고, 허정무 감독은 2000년 아시안컵 3,4위전에서 사우디아라비아에 패하고 2000년 11월 13일 끝내 사임하였다. (관련기사) 만일 이 때 아시안컵에서 괜찮은 성적을 거뒀더라면 우리는 히딩크 감독을 데려올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번 축구협회 기술위원회의 사퇴를 지켜보는 것이 낯설지 않은 것은 바로 2000년의 기억 때문일 것이다. 그 이후에는 기술위원회만 총사퇴하며 감독을 유임시켰던 사례는 없었던 걸로 기억된다. 감독의 퇴진과 함께 기술위원회가 동반 사퇴했던 것이 그간 한국 대표팀의 운영방식이었던 데 비춰 이번 일은 매우 이례적이다. 더군다나, 이런 일은 모두 허정무 감독 시절에만 일어났다는 사실에 대해 어떤 해석을 내려야 할지 궁금하다.

허정무 감독은 2007년 말 대표팀 감독 선임 때부터 잡음이 많았다. 허정무 감독의 실적으로 보아 대표팀 감독직을 다시 맡기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특히, 2000년의 아시안컵에서 허감독에 대한 엄청난 반발을 생각한다면 뭔가 아직 보여준 게 부족하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축구협회 내 학연간의 파벌 문제 등을 거론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정확히 판단할 만한 정보를 갖지 않은 탓이다. 그러나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다음은 1990년 이후 우리나라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의 목록이다.

감독 코치 재임기간
허정무 정해성,박태하 2007.12.7 ~ 현재
핌 베어벡 압신 고트비, 홍명보 2006.6.26 ~ 2007.7.29
딕 아드보카트 핌 베어벡 2005.10.1 ~ 2006.6.26
요하네스 본프레러 허정무 2004.6.24 ~ 2005.8.23
박성화 (감독대행) 2004.4.28 ~ 2004.6.9
움베르투 코엘류 박성화 2003.3.1 ~ 2004.4.19
거스 히딩크 박항서 2001.1.1 ~ 2002.6.30
허정무 정해성 1998.10.14 ~ 2000.11.13
김평석 (감독대행) 1998.6.22 ~ 1998.6.25
차범근 김평석 1997.1.8 ~ 1998.6.21
박종환 최만희 1996.7.8 ~ 1997.1.7
박종환 정해성 1996.2.15 ~ 1996.7.7
고재욱 박경훈 1995.10.20 ~ 1995.10.30
정병탁 조윤환 1995.9.16 ~ 1995.9.30
허정무 이장수 1995.8.1 ~ 1995.8.12
박종환 최만희 1995.4.26 ~ 1995.7.31
아나톨리 비쇼베츠 김성남 1994.7.24 ~ 1995.2.26
김호 허정무 1993.11.30 ~ 1994.7.23
김호 유기흥 1992.11.10 ~ 1993.10.29
김호 조광래 1992.7.8 ~ 1992.11.9
고재욱 허정무 1991.5.22 ~ 1991.7.27
박종환 김희태 1990.8.9 ~ 1990.10.23
이차만 김희태 1990.7.3 ~ 1990.8.8
(출처: 위키피디아 )

위 표를 바탕으로 90년 이후 감독 혹은 코치 자리에 2회 이상 이름을 올렸던 분들의 명단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적어도 허정무 감독은 축구협회에서 가장 자주 부르는(?) 감독이다. (코치였다가 감독대행으로 이름을 올렸던 김평석, 박성화 감독은 제외하였다.) 2000년 이후의 감독들 이름을 살펴보면 (박성화 감독대행을 제외한다면) 허정무 감독의 이름 사이에 외국인 감독들만 끼워 넣은 형국이다. 과연 우리나라에 허정무 감독 외에는 감독직을 수행할 만한 능력있는 사람들이 없었던 것일까.
박종환 4회 (감독 4회)
고재욱 2회 (감독 2회, 모두 단기간)
김호 3회 (감독 3회)
허정무 6회 (감독 3회 코치 3회)
정해성 3회 (코치 3회)
핌 베어벡 2회 (감독 1회 코치 1회)
최만희 2회 (코치 2회)
김희태 2회 (코치 2회)
기술위원회와 대표팀 감독의 관계는 서로 보완하기 위해 존재하는 만큼 어쩌면 동반사퇴가 타당할지도 모른다. 사실상 현재의 축구대표팀 부진은 정보 수집이나 전력 분석 등의 부분보다는 전술적인 부족함을 많이 지적받는 만큼 기술위원장의 사퇴는 뭔가 어색하다. 거기다 조중연 전 기술위원장은 사퇴한 이듬해 축구협회 전무로 자리를 잡았다. 일부 축구팬들은 이번 이영무 기술위원장이 퇴진 후 어디에서 자리를 잡을지 벌써 관심을 갖고 있다.

허정무 감독에 대해 개인적인 비난을 쏟아놓고 싶지는 않다. 전남 드래곤즈에서도 국가대표팀에서도 보여준 것은 부족했지만, 오히려 더 많은 문제는 축구협회에 있어 보인다. 그리고, 분명히 나보다 축구를 더 많이 아는 분임에는 틀림없다. 축구협회의 감독 선임은 늘 과정에서 문제를 지적받아 왔음에도 나아지지 않고 있다. 한국 축구의 비전이 없이 당면한 일정들만 바라보고 대표팀 감독을 선임한다면 국가대표팀의 발전은 없을 것이다.


2008년 6월 22일 일요일

히딩크는 4강 징크스를 넘을 수 있을까?

22일 새벽(한국시간)에 있었던 네덜란드와 히딩크의 대결은 여러가지 흥미로운 점을 담고 있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러시아가 토탈사커의 원조인 네덜란드를 상대로 경기를 펼친다는 점, 반 바스텐 감독이 20년 전 네덜란드를 유로피언 챔피언쉽에서 우승에 올려놓은 이후 다시 감독으로 같은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 그리고 한 가지 더 주목해야 할 점은 네덜란드와 히딩크는 1988년 이후 국제경기에서 우승을 거둔 적이 없다는 점이다.

흔히들 네덜란드를 강력한 4강 후보, 만년 4강 등으로 이야기를 하는 데는 바로 네덜란드의 강력한 공격력에도 불구하고, 결승까지 가지 못했던 네덜란드의 20년에 걸친 축구사가 있었다. 1998년 월드컵에서 히딩크 감독이 이끌던 네덜란드가 한국을 5:0으로 꺾으면서, 많은 한국의 축구팬들은 졌지만 강력한 공격축구에 매혹되어 버렸다. 네덜란드는 많은 한국팬들의 응원을 받았지만, 결국 4강에서 브라질에게 페널티킥까지 가는 접전 끝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이것이 최근의 축구팬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네덜란드와의 첫 인연이자, 네덜란드의 4강 역사였을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히딩크 감독 역시 네덜란드 축구와 똑같은 4강 징크스를 겪어 왔다는 점이다. 둘 다 1988년 이후로 말이다. 다음 표는 히딩크 감독과 네덜란드가 겪어 온 4강 징크스의 역사이다. (왼쪽이 히딩크 감독, 오른쪽이 네덜란드 축구의 88년 이후 결과)

네덜란드와 히딩크 감독의 국제경기 4강 징크스에 관한 기록

연도 (시즌)
대회
결과
1987-1988
유러피언 컵
우승
1988-1989
유러피언 컵
8강
1998
프랑스 월드컵
4강
2002
한국-일본 월드컵
4강
2004-2005
UEFA 챔피언스 리그
4강
2005-2006
UEFA 챔피언스 리그
16강
2008
유로 2008
4강(진행 중)
연도
대회
결과
1988년
유로 1988우승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16강
1992년유로 19924강
1994년미국 월드컵8강
1996년유로 19968강
1998년프랑스 월드컵
4강
2000년유로 20004강
2004년유로 20044강
2006년독일 월드컵
16강
2008년유로 20088강

히딩크 감독이 PSV 아인트호벤을 이끌고 1988년 여름에 우승했던 유러피언 컵은 UEFA 챔피언스리그의 전신으로, 92년 이후에는 UEFA 챔피언스리그로 발전되었다. 히딩크 감독의 기록은 1998년 이후 유러피언 컵, 챔피언스리그, 월드컵, 유로피언 챔피언스 컵(EURO) 등을 모아 정리하였다.

굳이 이것을 징크스라는 이름을 붙여야 하는지는 의심스럽다. 다만, 흔히들 이야기하는 네덜란드 축구의 약점은 바로 토너먼트에서의 약점이라는 것. 토탈사커로 일컬어지는 네덜란드의 축구 스타일은 아무래도 선수들의 움직임이 많아질 수밖에 없고, 토너먼트와 같은 단기전에서는 후반으로 갈 수록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이 때문에 좋은 경기력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 이런 체력 저하 현상은 이미 2002년 월드컵 때 한국 대표팀이 경험했던 것이고, 러시아 역시 네덜란드와 연장전까지 가는 경기를 치르면서 많은 체력 고갈이 예상되는 바다. 이번에는 다음 경기까지 5일이나 남아 있어 체력적인 부분에서의 영향은

일단 네덜란드는 8강에서 떨어지면서 4강 이상 올라가지 못하는 징크스를 이어가고 있다. 히딩크의 러시아는 4강 징크스를 뛰어넘을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팀의 분위기가 한껏 올라 있는 만큼 히딩크 감독의 결승 진출은 어느 때보다도 유력해 보이지만,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승자 중에서 어느 팀이 올라오는지에 많은 영향을 받을 것처럼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조심스레 이탈리아와 러시아의 대결을 예상하고, 이탈리아가 러시아와의 대결에서 이기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해 본다. 이탈리아는 토너먼트에서 유난히 강한 저력을 보여 왔다.

UPDATE) 예상이 빗나가 러시아의 상대는 스페인으로 결정됐다. 조별리그에서 러시아에 대패를 안겨줬지만 여전히 승부의 향방은 오리무중이다. 히딩크 감독이 한 번 상대했던 팀에 대해 어떤 대책을 세웠을지가 중요하고, 분위기가 상승세인 러시아의 호성적이 기대되는 부분도 있다.

한 가지 더 재미있는 것은 스페인도 징크스의 팀이라는 것. 스페인은 이탈리아를 88년동안 이기지 못했던 징크스에도 불구하고 4강에 진출했고, 24년 만에 처음으로 4강에 오르면서 징크스 브레이커가 되었다. 스페인이 기세를 몰아 올라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어쨌거나 독일을 제외하고 최근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던 팀들로 4강이 채워졌다는 것은 유로 경기를 바라보는 많은 팬들에게 흥미진진한 결과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