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 22일 일요일

히딩크는 4강 징크스를 넘을 수 있을까?

22일 새벽(한국시간)에 있었던 네덜란드와 히딩크의 대결은 여러가지 흥미로운 점을 담고 있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러시아가 토탈사커의 원조인 네덜란드를 상대로 경기를 펼친다는 점, 반 바스텐 감독이 20년 전 네덜란드를 유로피언 챔피언쉽에서 우승에 올려놓은 이후 다시 감독으로 같은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 그리고 한 가지 더 주목해야 할 점은 네덜란드와 히딩크는 1988년 이후 국제경기에서 우승을 거둔 적이 없다는 점이다.

흔히들 네덜란드를 강력한 4강 후보, 만년 4강 등으로 이야기를 하는 데는 바로 네덜란드의 강력한 공격력에도 불구하고, 결승까지 가지 못했던 네덜란드의 20년에 걸친 축구사가 있었다. 1998년 월드컵에서 히딩크 감독이 이끌던 네덜란드가 한국을 5:0으로 꺾으면서, 많은 한국의 축구팬들은 졌지만 강력한 공격축구에 매혹되어 버렸다. 네덜란드는 많은 한국팬들의 응원을 받았지만, 결국 4강에서 브라질에게 페널티킥까지 가는 접전 끝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이것이 최근의 축구팬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네덜란드와의 첫 인연이자, 네덜란드의 4강 역사였을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히딩크 감독 역시 네덜란드 축구와 똑같은 4강 징크스를 겪어 왔다는 점이다. 둘 다 1988년 이후로 말이다. 다음 표는 히딩크 감독과 네덜란드가 겪어 온 4강 징크스의 역사이다. (왼쪽이 히딩크 감독, 오른쪽이 네덜란드 축구의 88년 이후 결과)

네덜란드와 히딩크 감독의 국제경기 4강 징크스에 관한 기록

연도 (시즌)
대회
결과
1987-1988
유러피언 컵
우승
1988-1989
유러피언 컵
8강
1998
프랑스 월드컵
4강
2002
한국-일본 월드컵
4강
2004-2005
UEFA 챔피언스 리그
4강
2005-2006
UEFA 챔피언스 리그
16강
2008
유로 2008
4강(진행 중)
연도
대회
결과
1988년
유로 1988우승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16강
1992년유로 19924강
1994년미국 월드컵8강
1996년유로 19968강
1998년프랑스 월드컵
4강
2000년유로 20004강
2004년유로 20044강
2006년독일 월드컵
16강
2008년유로 20088강

히딩크 감독이 PSV 아인트호벤을 이끌고 1988년 여름에 우승했던 유러피언 컵은 UEFA 챔피언스리그의 전신으로, 92년 이후에는 UEFA 챔피언스리그로 발전되었다. 히딩크 감독의 기록은 1998년 이후 유러피언 컵, 챔피언스리그, 월드컵, 유로피언 챔피언스 컵(EURO) 등을 모아 정리하였다.

굳이 이것을 징크스라는 이름을 붙여야 하는지는 의심스럽다. 다만, 흔히들 이야기하는 네덜란드 축구의 약점은 바로 토너먼트에서의 약점이라는 것. 토탈사커로 일컬어지는 네덜란드의 축구 스타일은 아무래도 선수들의 움직임이 많아질 수밖에 없고, 토너먼트와 같은 단기전에서는 후반으로 갈 수록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이 때문에 좋은 경기력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 이런 체력 저하 현상은 이미 2002년 월드컵 때 한국 대표팀이 경험했던 것이고, 러시아 역시 네덜란드와 연장전까지 가는 경기를 치르면서 많은 체력 고갈이 예상되는 바다. 이번에는 다음 경기까지 5일이나 남아 있어 체력적인 부분에서의 영향은

일단 네덜란드는 8강에서 떨어지면서 4강 이상 올라가지 못하는 징크스를 이어가고 있다. 히딩크의 러시아는 4강 징크스를 뛰어넘을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팀의 분위기가 한껏 올라 있는 만큼 히딩크 감독의 결승 진출은 어느 때보다도 유력해 보이지만,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승자 중에서 어느 팀이 올라오는지에 많은 영향을 받을 것처럼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조심스레 이탈리아와 러시아의 대결을 예상하고, 이탈리아가 러시아와의 대결에서 이기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해 본다. 이탈리아는 토너먼트에서 유난히 강한 저력을 보여 왔다.

UPDATE) 예상이 빗나가 러시아의 상대는 스페인으로 결정됐다. 조별리그에서 러시아에 대패를 안겨줬지만 여전히 승부의 향방은 오리무중이다. 히딩크 감독이 한 번 상대했던 팀에 대해 어떤 대책을 세웠을지가 중요하고, 분위기가 상승세인 러시아의 호성적이 기대되는 부분도 있다.

한 가지 더 재미있는 것은 스페인도 징크스의 팀이라는 것. 스페인은 이탈리아를 88년동안 이기지 못했던 징크스에도 불구하고 4강에 진출했고, 24년 만에 처음으로 4강에 오르면서 징크스 브레이커가 되었다. 스페인이 기세를 몰아 올라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어쨌거나 독일을 제외하고 최근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던 팀들로 4강이 채워졌다는 것은 유로 경기를 바라보는 많은 팬들에게 흥미진진한 결과가 될 것으로 보인다.



2008년 6월 10일 화요일

유로 2008, 네덜란드의 첫골은 오프사이드?

유로 2008에서 죽음의 조로 불리는 C조의 경기가 오늘(6월 10일) 시작됐다. 2006년 월드컵 우승팀 이탈리아. 1998년 월드컵 우승, 2000년 유로 2000 우승, 2006년 월드컵 준우승에 빛나는 프랑스. 영원한 4강팀, 강력한 화력의 네덜란드. 이 세 팀이 한 조에 편성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유로 2008에서 가장 잔인한 신의 장난이라 불릴 만 하다.

오늘 가장 주목받는 경기는 네덜란드와 이탈리아의 경기. 네덜란드는 30년간 이탈리아를 이기지 못했다는 역사에서도, 유난히 공격적인 축구를 구사하는 네덜란드와 강력한 수비의 대명사로 불리는 카데나치오 이탈리아의 경기는 예선 최고의 빅매치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네덜란드는 전 세계 축구팬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팀 중 하나이다. 토탈 사커가 시작된 곳, 히딩크식 토탈 사커가 우리나라에서는 상당히 수비적이었지만, 네덜란드의 토탈 사커는 모두 공격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처럼 모든 선수들은 상대편 골대를 향해 질주한다. 네덜란드의 경기는 절대 지루하지 않다는 것을 많은 축구팬들은 알고 있다.

개인적인 선호도에도 불구하고 반니스텔루이의 발을 거친 공이 이탈리아의 골대를 흔들 때는 "오프사이드"라는 말이 튀어나올 수밖에 없었다. 당연한 듯 보였던 오프사이드 판정은 끝내 내려지지 않았고, 이탈리아는 1:0으로 끌려가며 경기를 네덜란드에게 내주고 만다. 그리고, 경기가 끝날 때까지 이탈리아가 오심으로 경기를 밀린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 피파의 경기규칙("Laws of the Game") 을 다시 읽어보기 전까지 말이다.

먼저 골이 들어간 상황을 살펴보자. 스네이더가 떄린 강력한 슛을 반니스텔루이가 잘라 먹으면서 골을 만들어냈다. 첫 번째 그림에서 보듯이 스네이더가 슛을 하는 시점에 이미 반니스텔루이와 이탈리아 골대 사이에는 골키퍼 한 명밖에 없었고, 이것은 오프사이드 위치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스네이더의 강력한 슛

반니스텔루이에게 연결되는 스네이더의 슛


반니스텔루이의 골

반니스텔루이의 골

반니스텔루이의 골

그런데 왜 이 골에 대해 오프사이드가 선언되지 않았을까? 위 그림에서 이탈리아 선수 중 한 명이 엔드라인 바깥에 누워 있는 장면이 보이는데 바로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가 오프사이드의 여부를 판단하는 핵심이다. 이 상황과 관련된 규정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LAW 11. 오프사이드(OFFSIDE), 다른 하나는 LAW 3. 선수의 수(THE NUMBER OF PLAYERS)에 관한 규칙이다. 먼저 오프사이드에 관한 규칙을 살펴보자.

If a defending player steps behind his own goal line in order to place an opponent in an offside position, the referee shall allow play to continue and caution the defender for deliberately leaving the field of play without the referee’s permission when the ball is next out of play.

수비를 하는 선수가 상대 선수를 오프 사이드 포지션에 빠뜨리기 위하여 자신의 골라인 뒤쪽으로 이동하면 심판은 계속 경기를 진행할 수 있고, 다음 번 공이 멈추었을 때 (즉, 아웃 오브 플레이 상태가 되었을 때) 심판의 허락 없이 고의적으로 경기장을 떠난 데 대해 주의를 줄 수 있다. (피파 경기 규칙 102페이지)
다음은 LAW 3. THE NUMBER OF PLAYERS 중 일부분이다. 심판이 허락한 경우가 아니라 경기를 하다가 일시적으로 벗어난 경우라면, 경기의 일부로 보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If a player accidentally crosses one of the boundary lines of the field of play, he is not deemed to have committed an infringement. Going off the field of play may be considered to be part of a playing movement.

선수가 우연히 경기장의 경계선을 넘었을 경우, 그 선수는 규칙을 위반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 경기장을 벗어난 것은 경기를 하면서 생기는 움직임의 하나로 판단할 수 있다. (피파 경기 규칙 64페이지)
즉, 경기장에서 선수는 고의로 오프사이드를 만들기 위해 경기장을 벗어나서도 안되며, 경기장을 피치 못한 상황으로 벗어났다 하더라도 그의 움직임은 경기의 일부이므로 오프사이드를 만들 수 있는 상황을 만들 수 없다.

그러나 여전히 논란의 여지는 있다. 오프사이드 규정 자체만 살펴 본다면 이 상황을 오프사이드 위치로 판단하더라도 무리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 LAW 3의 내용은 고의적으로 떠나지 않았으므로 주의를 줄 필요가 없다는 쪽의 이야기에 가깝다. 그리고, 오프사이드 규정에서는 고의적으로 떠난 상황에서 경기를 지속하라는 이야기이므로, 이 상황에 딱 맞는 규정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다음은 오프사이드 위치에 관한 정의.
A player is in an offside position if:
  • he is nearer to his opponents’ goal line than both the ball and the second last opponent

다음의 경우에 선수는 오프사이드 위치에 있다.
  • 그 선수가 두 명 미만의 상대편 선수와 공 모두 보다 상대 골라인에 가깝게 있을 때.
[UPDATE] 좀 더 이해하기 쉬운 오프사이드 위치의 정의를 덧붙여 둔다.
  • 공격수가 공보다도 그리고, 최종 수비수 앞쪽에 있는 수비수(the second last)보다 골라인 가깝게 위치 할 때 (by 익명님)
  • 선수가 그의 상대편 골 라인으로부터 볼과 최종의 두번째 상대편 선수보다 골 라인에 더 가까이 있을 때 (from 대한축구협회)

축구는 다른 스포츠에 비해 규칙의 수가 무척 적다. 몇 가지 룰로만 설명이 가능한 스포츠라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이렇게 복잡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혼동할 수 있는 여지가 존재한다. 그 짧은 시간에 적절한 판단을 내리는 것은 심판이 책임져야 할 일인 듯 하다.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이번 판정을 오심으로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개인적으로는 매우 적절한 판정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