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2월 28일 수요일

수원의 대전에 대한 징크스, 그리고 대전 시티즌 서포터에 관한 이야기

이 글은 가난한 프로축구팀 대전 시티즌을 응원하는 서포터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들이 사랑하는 축구팀이 겪는 일들을 함께 고민하고 슬퍼했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수원삼성 블루윙즈가 대전 시티즌에 대해 징크스를 갖게 된 경기의 뒷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국의 프로축구를 오랫동안 봐 온 사람들에게 대전 시티즌은 아마도 "가난한 구단" 혹은 "꼴찌 구단"의 이미지로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대전 시티즌은 그렇게 쉽게 이야기하기엔 가진 것이 너무 많은 구단이다. 오늘도 "거지팀 없어져라"라는 식의 댓글을 다는 무책임한 악플러들과 자신들의 팀은 재정이 탄탄하기 때문에 "가난함"을 무시하는 일부 몰지각한 축구팬들은 경기장에서 울고 웃는 많은 사람들의 팀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없어진 축구팀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싫은 분들께는 매우 죄송한 이야기지만 안양이나 부천을 사랑했던 팬들은 한국에서 가장 불행한 축구 팬이다. 대전 시티즌 팬들은 불행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들처럼 오랫동안 팀의 가난이 팬들을 위협했던 사례는 국내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자신의 팀을 사랑하는 한국의 모든 축구 팬들과 이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다. 그리고, 지금도 빼앗긴 팀을 대신할 팀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부천FC, 안양 시티즌의 팬과 관계자 여러분께 위로와 격려를 전하고 싶다.


1. 해체 위기

대전 시티즌이 겪은 여러 번의 해체 위기 중 2002년의 일을 이야기해 볼까 한다.

2002년을 월드컵의 해로 기억하는 사람들은 적어도 한국 축구를 좋아했거나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2003년에 대전 시티즌이 좋은 성적을 올렸던 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대전 시티즌에 꽤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2002년에 대전 시티즌이 얼마나 어려운 시기를 보냈는지, 그리고 지금의 대전 시티즌의 상황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기억하는 사람들은 대전 시티즌을 절대 버릴 수 없는 사람들이다.

1997년 창단된 대전 시티즌은 한국 프로축구에 열번째 팀으로 등장했고, 김기복 감독과 함께 프로축구 무대에 등장했다. 창단 때 컨소시엄을 이뤄 팀의 운영을 함께 책임지기로 했던 동아건설, 동양백화점, 충청은행은 IMF와 함께 파산 혹은 합병을 겪으며 운영에서 손을 떼었다. 그 이후 팀의 재정을 모두 도맡았던 계룡건설은 축구팀을 도맡아 운영하기엔 작은 기업이었다.

충분치 못한 자금과 엷은 스쿼드는 2002년 최악의 성적으로 이어졌다. 계룡 건설은 2002년 11월 14일, 마침내 대전 시티즌의 운영을 포기하고 만다. 2001년 이태호 감독의 부임 이후 2년 연속 정규리그에서 꼴찌를 기록했던 대전 시티즌은 창단 이후 최악의 위기를 맞게 된다.


2. 서명 운동

힘없고 돈 없는, 그렇지만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일이 서명운동이다. 퍼플크루는 조직적으로 대전 은행동의 으능정이 거리에서 서명운동을 진행했다. 15살 중학생부터 40대 아저씨들까지 언 손을 녹여 가며 길거리 서포팅과 서명 운동을 진행하던 장면을 회상해 보면 아직도 코 끝이 찡하다.

길거리 서명운동과 별개로 많은 퍼플크루의 회원들은 열성적으로 서명운동을 진행했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에서, 대학교 곳곳에서 서명 운동이 벌어졌다. 학생들은 각자의 학교에서 서명운동 용지를 들고 돌아다녔다. 다른 지역(서울, 부산 등)에 있는 퍼플크루 회원들이 각자 받은 서명운동 용지를 대전의 퍼플크루 사무실로 부쳐 오기도 했다.

이 시기에 대전 시티즌의 FA컵이 진행되고 있었다.


3. 수원삼성 블루윙즈와의 FA컵 4강전

12월 8일, 남해 스포츠파크에서 열린 FA컵 8강전에서 대전 시티즌은 울산 현대를 3:1로 꺾고 4강에 진출한다. 4강전과 결승전이 열리는 곳은 제주 서귀포 경기장. 대전의 서포터들은 이 경기들이 팀의 마지막 경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제주도 원정 응원을 계획한다. 말이 원정이지 국내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드는 곳이 제주도 원정이다.

퍼플크루 카페는 제주도 원정 응원을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며칠 남지 않은 탓에 어느 때보다도 상황은 급박하다. 결정된 단관비용은 12만원. 제주도 갈 여비가 부족한 회원들을 위해 40대의 어느 회원께서는 10명까지는 3개월 무이자로 빌려주겠다는 말로 원정 단관을 독려하기도 했다.

2002년 12월 12일, FA컵 4강전 제주 원정에 최종적으로 원정 응원을 신청한 사람은 45명. 그러나 이게 다가 아니었다. 단체관람 비용를 줄이기 위해 배를 타고 제주도로 떠난 사람, 대전 외의 지역에서 가야 해서 개인 자격으로 간 사람들도 있었으니 퍼플크루 최초의 해외(!) 원정 응원단의 규모는 약 60명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제주도까지 60여명이 원정 응원을 갈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대전이 이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그래서 이 경기를 보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퍼플크루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간절히 승리를 원했다. 2001년의 FA컵 우승을 기억하며 어쩌면 우승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도 꽤 있었으리라.

많은 사람들과의 바람과는 달리 서정원의 골로 대전은 수원에게 1:0으로 패배하고 만다. 그러나, 이 골이 논란이 많았다. 당시 KBS로 중계됐던 이 경기의 해설을 맡았던 이용수 해설위원은 방송에서 오프사이드였고, 오심이었음을 지적했다. 사실 그것이 오프사이드였든 아니었든 경기장에서 선수들의 항의는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었고, 매우 드라마틱할 수 있었던 4강전 경기는 그렇게 끝나고 만다.

그러나, 축구에는 더 재미있는 일이 많다. 이 경기 이후 수원은 대전에게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2003년부터 2006년까지 정규리그, FA컵, 컵대회 모두 합쳐서 대전은 수원을 상대로 5승 8무라는 성적을 거두고 있다. 축구는 두 팀의 전력을 평가할 객관적인 수치 이상의 것을 종종 보여주곤 한다. 수원처럼 강력한 스쿼드를 갖춘 팀이 대전을 이기지 못해 온 최근 4년간의 기록은 무엇때문일까. 어쩌면 제주도에서 벌어졌던 그 안타까운 한 경기를 잊지 못하는 서포터들의 한(悍)이 이런 결과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징크스가 언제 깨질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 징크스를 "퍼플크루의 저주" 혹은 "오프사이드의 저주"라 부르고 싶다.


4. 퍼플크루 앨범

아마도 다른 서포터들도 그들만의 앨범을 낼 지도 모르겠지만, 퍼플크루는 구단의 해체 위기를 극복하려는 서포터들의 의지를 담아 서포팅 앨범을 제작하였다. 앨범 제작은 많은 사람들이 힘을 모은 결과물이었다. 그 앨범 제작 과정은 직접 참여하지 않은 사람으로서 자세히 전하기는 어렵다. 훗날, 직접 참여했던 사람들에 의해 그 과정이 자세하게 기록되기를 기대한다.

2002년 겨울에 만들어졌던 퍼플크루 서포팅 앨범 "For Fevers" 중 가장 좋아하는 곡 셋을 소개한다.

- 독립군가로 사용되었던 곡에 가사를 붙인 대전 시티즌 클럽송


- 가수 지망생인 걸로 알려졌던 객원 여가수의 목소리가 듣기 좋은 We are the purple


- 대전 시티즌의 해체 위기를 안타까워 하는 마음을 담은 곡. 어느 작곡자가 퍼플크루 앨범을 위해 기증한 곡이다. 다시 시작해(again)




2005년 다시 한 번 해체위기를 겪은 대전 시티즌은 3만 명 이상의 소액주주들이 참여하면서 성공적으로 시민구단으로 전환했다. 이것으로 자금이 충분해졌거나 앞으로 안정적인 발전을 할 것이라는 기대는 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이제 쉽게 망할 수는 없는 구단이 되었다.

이제 며칠 후면 대전 시티즌과 수원 삼성의 2007년 K리그 개막전이 수원에서 벌어진다. 리그 일정이 나왔을 때부터 수원과 대전이 개막전에서 붙었다며들 수선을 떨었다. 징크스라는 것은 언젠가는 깨어지기 마련이다. 어느 해보다도 젊은 선수들에게 의존하고 있는 대전 시티즌의 올 시즌을 밝게 전망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어쩌면 적어도 3번을 대전과 맞붙게 되어 있는 수원은 올해 징크스를 깨게 될 지도 모른다.

징크스가 깨어지든 그렇지 않든 그것이 대전 시티즌 팬들에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대전 시티즌의 팀 사정이 여전히 어렵기는 하지만 앞을로도 계속 이 팀의 경기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모든 팬들이 자신의 팀을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대전 시티즌은 위대한 클럽이다. 그리고, 퍼플크루는 팀을 지켜 낸 최고의 서포터이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엔 말이다.)

9 개의 댓글:

Unknown :

오우 찡한데요~
대전가면 축구보러 가봐야 겠어요. 3년간 한번도 못갔네요;

익명 :

잘봤습니다...^^
퍼플크루 홈페이지 관리자 김진우입니다.
RSS 리더기에 추가했습니다..ㅋㅋ
종종 놀러올게요...^^

익명 :

2002년 겨울은 제가 막 대전 월드컵 경기장에 발을 들여놓던 시기인데, 이런 일들이 있었군요.

Joongsoo :

powereyes // 네. 축구는 눈보다 마음으로 응원하는 거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꼭 보러 오세요. 스토리를 알고 보면 더 재밌으니까요. ^^

kwan02 // 진우님. 생각해 보니 제가 프로필에다가 제 블로그 주소를 적어 놨더라구요. ^^;; 자주 들러 주세요. 사실은 저는 진우님 블로그를 이미 등록해 뒀답니다. ㅎ

나라목수 // 제 블로그에 가장 많은 글을 남겨 주신 나라목수님!! 오늘도 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

익명 :

미명TM 회원님의 상기 포스트가 미디어몹에 링크가 되었습니다.

익명 :

수원의 대전징크스 ㅋㅋ
얼마전에 소풋정모에서 수원은 대전, 전북한테 맨날 발리잖어~ 그랬더니 수원팬이 좌절하시던 모습이 생각납니다.ㅋㅋ
징크스는 깨지라고 있는거라지만 그게 잘 안깨지니까 징크스겠지요 올해도 산뜻한 스타트~!!

익명 :

눈물이 날라고 그래 ㅠ.ㅠ

Joongsoo :

미디어몹// 늘 고맙습니다. ^^;;

rainyst// 네. 올 시즌도 산뜻한 스타트가 되면 좋겠네요. 수원 스쿼드가 너무 강해서 사실 많이 불안합니다.

신묘군// 형님. 감수성이 너무 풍부하셔요. ^^

익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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